김진홍 목사 설교, 요한일서1장1절 – 좋은 교회 나쁜 교회 03.01.26

“태초부터 시작된 사귐과 섬김”
1️⃣ “태초부터” — ἀπ᾽ ἀρχῆς (ap’ archēs)

요한은 “옛날에”라고 하지 않습니다.
“태초부터”라고 말합니다.

헬라어 ἀρχή (archē) 는
시작
근원
통치의 근본
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즉, 복음은
인간이 만든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시작점입니다.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
시간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은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신 이야기입니다.

2️⃣ “사귐” — κοινωνία (koinōnia)

요한일서 1:3에 “사귐”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κοινωνία는 단순한 친목이 아닙니다.

공동 참여

생명을 함께 나눔

존재를 공유함

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종으로만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교제의 대상으로 부르셨습니다.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
우리와 “사귐”을 가지신다는 것,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신앙은
예배 참석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실제적 교제입니다.

3️⃣ “섬김·봉사” — διακονία (diakonia)

헬라어 διακονία는

시중들다

봉사하다

필요를 채우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만 오지 않으셨습니다.
발을 씻기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태초의 말씀이
종의 모습으로 섬기셨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권위를 주장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4️⃣ 연결: 태초 → 사귐 → 섬김

이 흐름이 중요합니다.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

우리와 사귀기 위해 오셨고

그 사귐은 섬김으로 나타났다

사귐 없는 섬김은 활동주의입니다.
섬김 없는 사귐은 감정 신앙입니다.

진짜 신앙은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시작해
이웃을 향한 섬김으로 흘러갑니다.

🌿 오늘 우리에게 주는 적용

✔ 나는 하나님과 πραγμα적인 κοινωνία를 누리고 있는가?
✔ 내 신앙은 διακονία로 나타나고 있는가?
✔ 태초의 진리를 붙들고 있는가, 시대의 흐름에 흔들리고 있는가?